'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원조 디바, 가수 박재란.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뛰어난 미모, 시대를 앞서간 패션 감각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녀는 '한번만 더'를 부른 가수 故 박성신의 어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했던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두 번의 아픈 이혼, 미국에서의 처절했던 생활고, 그리고 가슴에 묻은 딸까지,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이 있었습니다. 8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가요무대' 등에서 정정한 모습으로 노래하는 그녀, 박재란의 나이, 프로필, 딸 박성신과의 애틋한 사연, 그리고 그녀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총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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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란 프로필: 기본 정보
- 본명: 이영숙 (李英淑)
- 활동명: 박재란 (朴載蘭)
- 출생: 1938년 12월 16일
- 나이: 만 86세 (2025년 4월 기준)
- 고향: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 학력:
- 충청남도 천안국민학교 졸업
- 천안여자중학교 중퇴
- 가족:
- 아버지 이수천 (교회 오르가니스트), 어머니 유순남 (교회 성가대원)
- 형제: 5남 1녀 중 막내 (*다른 자료에는 5녀 1남 또는 그 이상의 형제자매 언급*)
- 자녀: 장녀 박성은, 차녀 故 박성신 (가수, 1968~2014)
- 종교: 개신교 (장로회 권사)
- 결혼 이력: 이혼 2회 (첫 남편: 박운양 / 두 번째 남편: 익명의 연하 재미교포)
- 데뷔:
- 1953년 주한 미 8군 무대 (비공식)
- 1957년 KBS 4기 전속가수 (공식)
- 별명: 한국의 패티 페이지, 꾀꼬리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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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 가수'의 탄생과 60년대 디바 시절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재란(본명 이영숙)은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였고, 어머니는 성가대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영향 덕분인지 그녀는 일찍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1953년, 불과 15살의 나이에 미 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김광수 문하에서 음악 수업을 받았고, 작곡가 박태준 선생에게 '박재란'이라는 예명을 받아 1957년 KBS 4기 전속가수로 합격하며 정식 데뷔했습니다. 꾀꼬리처럼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그녀는 '뜰 아래 귀뚜라미', '럭키 모닝',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시키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1958년 발표된 '산 너머 남촌에는'(김동환 시, 김동현 작곡)은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로,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59년에는 하와이 민요 'Pearly Shells'를 직접 번안 작사하고 박춘석이 편곡한 '진주 조개잡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여름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3년에 발표된 '님(창살 없는 감옥)' 역시 그녀의 애절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명곡입니다.
빼어난 미모와 연기력까지 갖춘 그녀는 1959년 영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녀가 입는 미니스커트, 유리구두 등 패션 아이템 하나하나가 화제가 될 정도로 '패션의 아이콘'이었으며, 故 앙드레 김 디자이너의 뮤즈로서 그의 의상을 선물받기도 했습니다.
결혼, 이혼, 그리고 미국에서의 시련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박재란은 돌연 결혼을 발표합니다. 상대는 동갑내기 성균관대생이었던 박운양 씨. 작곡가 김광수 씨의 소개로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하여 두 딸(박성은, 박성신)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남편 박운양 씨가 영화 제작에 손을 댔다가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박재란은 경제적 어려움을 만회하기 위해 남편과 쇼 단체를 만들어 전국 순회공연까지 했지만 실패했고, 100평 넘던 후암동 집은 점점 줄어 갈현동 전셋집 신세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외도 사실까지 알게 된 박재란은 결국 이혼을 결심합니다. 남편이 명동 다방 마담과 홍콩으로 도피하려던 계획을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여성에게 이혼은 큰 흠이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이혼의 아픔과 상처를 잊기 위해 박재란은 1970년대 미국행을 택합니다. 두 딸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전남편의 완강한 반대로 결국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미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라스베이거스 나이트클럽 등에서 노래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친한 지인에게 레스토랑 사업 사기를 당해 10억 원에 달하는 큰돈을 날렸고, 1979년에는 아파트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병까지 얻었습니다.
영주권이 없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해 열흘간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험난한 생활 속에서 딸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갔지만, 떳떳하게 만날 수 없는 현실에 눈물지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만난 10살(혹은 17살) 연하의 재미교포 남성과 재혼하여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했지만, 이 결혼 역시 남편이 마약(아편)에 빠져 행방불명되면서 5년 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지만, 가족과 딸들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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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박성신과의 애틋한 이야기: 생이별과 안타까운 죽음
미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박재란은 신문을 통해 둘째 딸 박성신이 가수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을 그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국으로 돌아와 비로소 딸과 재회하게 됩니다.
가수 박성신은 서울예전 재학 중이던 1987년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1989년 발표한 1집 타이틀곡 '한번만 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후 2집까지 발표하며 활동하다 목회자인 남편 임인성 씨와 결혼 후에는 CCM 가수로 활동하며 선교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성신은 2014년 8월 8일, 향년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장질환(심장마비 추정)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재란은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자신이 임신 중 무리하게 활동하느라 복대를 꽉 조였던 탓에 딸이 조산했고, 인큐베이터 생활을 하며 심장 등 기관이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딸의 장례식장에서 박재란은 큰 충격으로 실신했고, 깨어났을 때는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였습니다. 당시 사위 및 그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고, 박재란의 상태를 염려한 사위 측에서 묘지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한동안 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지 못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한 방송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수소문 끝에 딸의 묘를 찾은 박재란은 "어째서 먼저 갔냐", "엄마가 너 찾았으니 이제 자주 올게"라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한편, 큰딸 박성은 씨 가족은 당시 중국으로 이민을 간 상태여서 연락조차 닿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박재란 대표곡 노래모음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박재란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럭키 모닝 (1958)
- 산 너머 남촌에는 (1958)
- 진주 조개잡이 (1959)
- 푸른 날개 (1960)
- 해피 세레나데 (1960)
- 님 (창살 없는 감옥) (1963)
-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1964)
- 소쩍새 우는 마을 (1964)
- 코스모스 사랑
- 뜰 아래 귀뚜라미
- 행복의 샘터
- 꼴찌면 어때서 (2017)
- 사랑이 다쳐요 (2017)
최근 활동 및 근황
오랜 공백기와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박재란은 2017년, 신곡 '꼴찌면 어때서', '사랑이 다쳐요' 등을 발표하며 약 40년 만에 가요계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이후 KBS '가요무대', '아침마당', MBN '속풀이쇼 동치미'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근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최근(2025년 3월)에도 '가요무대'에 출연하여 '푸른 날개'와 '산 너머 남촌에는'을 열창하는 등, 8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과 변함없는 가창력으로 무대를 빛내고 있습니다. 비록 전성기 시절만큼 활발한 활동은 아니지만, 여전히 무대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195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하여 60년대를 풍미했던 '꾀꼬리 가수' 박재란. 화려했던 성공만큼이나 깊었던 삶의 시련들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8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비록 세월의 흔적은 남았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줍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박재란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녀의 음악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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